사람의 눈치를 살피는 처세술과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복음의 사명(행 24:22)
사람의 눈치를 살피는 처세술과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복음의 사명(행 24: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행 24:22)
자신의 출세와 탐욕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준 자가 있다. 그 이름은 본디오 빌라도이다.
그는 체세술의 달인이었다. 통상 총독의 임기가 4~5년인데 10년이나 그 자리를 유지하였다. 출세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잔인한 사람이었다.
그의 가장 큰 죄는 두려움의 대상을 잘못 선택하였던 것이다. 식민지 백성과 폭동과 자신의 정치적 안위를 염려해 예수님을 십자가 처형에 넘겼다.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마 27:24)
빌라도의 종말은 사마리아 백성들의 반란을 두려워하여 기병과 보병 부대를 동원하여 무력으로 진압하고 학살한 것이 문제가 되어 총독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결국에는 자살로 죽었다.
그리고 사람이라는 존재는 믿을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변덕스러운 것이 인간의 본 모습이다. 며칠 전에는 겉옷을 펴고 종려나무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졌던 무리가 순식간에 ‘예수를 못 박고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소리쳤다.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마 27:21)
사명자의 기준은 어떤 것인가, 사람을 기쁘게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인가를 택하여야 한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그러므로 강단에서 전하여야 할 복음은 청중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진노와 두려운 심판을 가감 없이 선포하여야 한다. 그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외쳐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목사가 사람들 두려워한다면 예수님의 복음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가 된다. 그러면 벨릭스가 되고 빌라도가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빌라도는 출세를 위한 것이라면 무슨 짓도 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권력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유대인의 왕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한 자입니다. 즉 하나님도 죽일 수 있다는 교만한 권세를 자랑한 자였습니다.
혹시 이렇게 무례한 행동을 교회 안에서 일삼는다면 큰 일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엘파소 열린문 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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