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의 참된 이익과 만왕의 왕을 바라보는 거룩한 청지기직(딤전 6:1)
경건의 참된 이익과 만왕의 왕을 바라보는 거룩한 청지기직(딤전 6:1)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딤전 6:1)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를 마무리 하면서 경건을 세속적 번영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배교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바라보는 종말론적 자족과 청지기직을 대조시킨다.
먼저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에게 상전을 공경할 것을 명한다. 이것은 기존의 사회적 불의나 노예제 자체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다.
즉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내적 자유을 얻은 자들은, 믿는 상전을 섬길 때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요 사랑을 받는 자로 대함으로써, 지상 사회의 계급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몸된 연합을 삶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거짓 교사들은 그리스도의 바른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떠나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물질적 번영, 사회적 성공, 자기 확장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왜곡하는 가장 치명적인 배교이다.
개혁주의 물질관은 이러하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종말론적 무소유 의식이다. 즉 생명과 호흡, 모든 일용할 양식은 창조주께서 값없이 베푸신 은혜의 산물임을 믿는다.
그래서 참된 경건은 소유의 많고 적음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 한 분 만으로 자족하는 자족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 6:6)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왜 그런가 하면. 물질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 물질을 탐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언약적 신뢰를 밀어내기 때문이다. 하나님 대신 맘몬을 궁극적 안전과 위로의 대상으로 삼는 순간 영혼은 근심으로 찔림을 받고 믿음에서 파선하게 된다.
그리고 참된 성도는 탐욕과 허탄한 변론으로부터 피하고 하나님의 성품인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람과 인애와 온유를 따라야 한다.
성도의 선한 싸움은 혈과 육의 전쟁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언약적 성취를 끝까지 붙드는 믿음의 수호 전쟁을 말한다.
구속사의 완성을 바라볼 때, 세상의 제국과 부귀영화는 일시적인 그림자에 불과하며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세세토록 존귀와 영원한 권능이 돌아가야 함을 확증하여야 한다.
택함을 받아 교회에 모인 자들은 재물을 자기 탐욕의 축적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교회를 세우고 이웃을 섬기라고 위탁하신 은혜의 도구임을 기억하여야 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들은 세상의 강력한 우상 앞에서, 오직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주권과 다시 오심을 바라보며 자족함과 거룩한 청지기직으로 살아가는 것이 책임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구속받은 자의 참된 영광이자 승리인 것입니다.
엘파소 열린문 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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