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릭스의 탐욕과 어떠한 처지에도 변치 않는 복음의 증인(행 24:10)
벨릭스의 탐욕과 어떠한 처지에도 변치 않는 복음의 증인(행 24: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행 24:10)
바울은 로마 군대 보호 하에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에 도착을 하였다. 그런데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 총독에게 바울을 고발한다. 즉 일을 방해하는 자들은 끝까지 따라 다니며, 거짓 증인을 세워 악행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문의 말씀의 배경은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바뀌었고, 총독이 바뀌었다. 그러나 바울은 어떠한 처지에 있더라도 변하지 않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주님의 가르침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 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오늘 등장하는 인물들의 특징이 있다. 자신의 유익과 출세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자들이다.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총독 벨릭스가 그러하다. 특히 이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사람들을 더 무서워하고 돈을 좋아 했던 것이다.
바울이 고발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때문이다. 그런데 총독 벨릭스는 부활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자이었다.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행 24:22)
부활에 대해서 자세히 잘 알고 있는데 재판을 미루고 천부장 루시아에게 미루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총독은 돈을 좋아하여 혹시 바울에게 돈을 받을까 하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행 24:26)
뇌물과 돈을 좋아하는 자가 벨릭스이다. 돈을 좋아하기에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출세와 탐욕에 눈먼 자가 진리를 알면서도 외면하고 불의를 택하였다. 벨릭스는 바울의 변명을 통해 부활의 도리와 바울의 무죄함을 알았음에도 그를 석방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총독 벨릭스는 마땅히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재판을 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자신의 이익과 돈(뇌물)을 탐하며 타협하는 불의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즉 하나님 보다 세상의 돈을 더 사랑했던 자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불의에 대한 심판이 있음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진노와 두려운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안에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우리들의 책임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엘파소 열린문 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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