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어느 때에 가서 말의 끝을 맺겠느냐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욥 18:2)
“너희가 어느 때에 가서 말의 끝을 맺겠느냐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욥 18:2)
욥의 친구 빌닷의 두 번째 변론이다. 그는 욥이 저항하는 것에 격분하여 점잖은 충고를 버리고 악인의 운명은 파멸뿐이라 하며 저주를 퍼붓는다.
그는 욥의 현재 상태(질병, 자녀의 죽음, 재산 몰수)를 악인의 최후와 빗대어 묘사한다. “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니라”(욥 18:21)
욥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우긴다고 해서 세상은 바뀌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는 사람아 너 때문에 땅이 버림을 받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지겠느냐”(욥 18:4)
그는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장막의 빛도 사라져 어두움 속으로 간다는 것이다.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욥 18:5)
악인의 최후를 끔찍하게 표현한다. 사망의 장자가 그의 피부를 먹는다며 노골적인 잔인한 말을 쏟아낸다. “질병이 그의 피부를 삼키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의 지체를 먹을 것이며”(욥 18:13)
악인은 의지하던 장막에서 뽑혀나와 죽음에게 끌려 가고, 그의 자손은 땅에서 끊어지고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 저주한다. “그가 의지하던 것들이 장막에서 뽑히며 그는 공포의 왕에게로 잡혀가고”(욥 18:14)
빌닷의 신학은 잘못된 종말론을 기초로 하고 있다. 성경은 의인도 고난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최후에 있을 심판을 지금 적용하며 선과 악의 개념으로 천국과 지옥을 나누고 있다.
질병은 죄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맞지만, 개별적인 질병이 개별적인 죄의 형벌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랑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
성도에게는 죽음이 더 이상 공포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부활로 사망의 권세를 깨트렸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들에게 두려움을 주어 행동을 교정하려는 시도는 율법주의가 됩니다.
사람은 공포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은혜가 임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즉 고난 중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전하여야 회개할 수 있습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롬 2:4)
신자들에게는 본향으로 가는 여행이 됩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의 외형적인 상태를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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