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행 1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행 14:19)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자를 일어서게 하며 주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 그런데 이고니온에서부터 쫓아온 자들에게 돌에 맞는다.
그래서 제자들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장례를 치를 준비를 한다.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난다. “제자들이 둘러셨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행 14:20)
바울은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 교회에 장로들을 택하고 다시 수리아의 안다옥으로 돌아간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당하여야 한다고 한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행 14:22)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인간의 생사화복의 문제는 하나님 손에 있고, 환난을 통하여 믿음이 성장한다는 것이다.
바울이 다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간다고 함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사명을 주신 자는 그 사명을 다하기까지 결코 버려지지 않는다는 성도의 견인의 확증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으로 이룬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기 위한 필연적이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남은 자를 택하시는 방식이다.
바울이 교회에 장로들을 택한다는 것은, 개인의 카리스마나 열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 안에서 세워짐을 말한다.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행 14:23)
안디옥으로 돌아온 사도들은 자신들의 수고와 헌신을 자랑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행 14:27) 즉 선교의 주체도, 교회를 세우시는 분도, 믿음을 주시는 분도 오직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영광을 온전히 하나님께 돌린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나바와 사울이 경험한 은혜는 이미 예수님의 가르침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십자가의 길은 자신의 편안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자리로 묵묵히 갑니다.
“누그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교회 안에서는 장로들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환난 속에서도 주님은 당신의 교회를 친히 세우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엘파소열린문 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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