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욥 14:14)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욥 14:14)


욥은 하나님 앞에서 탄식의 기도를 한다.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사는 날도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의 수명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계를 넘을 수 없음을 고백한다.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욥 14:1)


그러면서 인간은 나무보다도 못하다고 한다. 즉 나무는 찍혀도 다시 싹이 나는 소망이 있지만 사람은 죽으면 소멸하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욥이 하나님께 질문을 한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리이까?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욥 14:14)


그의 소망은 자신을 무덤에 감추었다가 진노가 지나면 다시 기억해 주시기를, 그리워해 주시는 것이다.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다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욥 14:15)


그리고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아픔을 토로한다. 물이 돌을 닳게 하듯 하나님이 사람의 희망을 끊으신다고 탄식하는 것이다. “물은 돌을 닳게 하고 넘치는 물은 땅의 티끌을 씻어버리나이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사람의 희망을 끊으시나이다”(욥 14:19)


욥의 탄식 속에는 인간의 전적 부패를 고백한다. 즉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갖고 태어나 죄로 오염되어 있다는 것이다.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욥 14:4)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하나님의 의가 필요함을 역속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작정과 절대 주권을 인정한다. 사람의 죽음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시간표 안에 있음을 말한다. “그의 날을 정하셨고 그의 날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의 규례를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욥 14:5)


욥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사람은 죽으면 끝이라 하였다. 그런데 초자연적인 소망을 품고 자신이 죽은 이후에 부르실 것이고, 부르면 대답을 할 것이라 한다.


또한 자신의 죄를 덮어 주시길 기도한다. 즉 십자가의 은혜가 임하여야 소망이 있음을 바라는 것이다. “주는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욥 14: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왜 죽습니까?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이제 우리는 찍힌 나무 같으나 다시 사는 산 소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자연의 생명력보다 더 위대한 영생이 우리에게 있음을 선포하여야 합니다.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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