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산다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으면 비록 제한적인 삶을 살지만 지루하다. 또한 오며 가며 만나는 사람들도 꼭 그리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삶의 방향과 목적이 있다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릴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자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기쁨이 있었다. 그런데 그 기쁨은 두려움 속에서도 기쁨이라 한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죽음을 내어 놓고 믿어야 하는 형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현대의 교회에서는 이러한 기쁨이 있는지에 대하여 질문이 생긴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런 기쁨을 누리고 싶다.
 
교회 안에는 지금 본질과 방향이 실종된 것 같다. 먼저 새생명을 얻은 기쁨이 없다. 새생명을 얻은 감사가 없다. 그리스도의 성품에 의하여 정당하여 진 자들이 거룩을 향한 목적과 방향을 상실하였다. 또한 어느 곳에 있든지 거룩한 자로 살아야 하는 거룩성을 잃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거룩한 영역이 있어야 하고, 통치의 왕이 있고 통치의 대상이 증거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한 몸이라는 일치성이 있어야 한다.
 
교회의 본질과 속성이 실종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의 기쁨이 없다. 그러다보니 개인과 개인의 싸움이 있고, 파벌 싸움이 있고, 원로 목사와 후임 목사 간에 싸움이 있는 것이다. 갈등의 원인은 나아갈 방향과 목적이 다르다 보니 갈등과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교회의 믿음의 본질은 십자가의 믿음의 비밀에서 시작이 된다. 예루살렘 교회는 큰 교회 건물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방송 시설을 탓하지 않았고, 주차장 시설을 걱정하지 않았다. 모일 수 있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곳이면 만족하였다.
 
교인들은 모이는 것을 두려워하였지만, 사도들의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남으로 인하여 날마다 같은 마음으로 모이기를 힘쓰고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때의 정황을 보면 주변의 환경에서 오는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은혜와 평강이 넘쳤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참으로 놀랄 일이다. 지금의 신자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집 식구들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있어야 할 것이 그곳에 있어야 하는데, 그곳에 없으니 답답하다.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먼저 그리스도와 연합이 있어야 하고, 교인들끼리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교회에 모이는 자들은 생각과 목적이 같아야 한다. 새생명을 얻은 자들이 모여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나아가는 자들이어야 한다. 그래야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는 부흥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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