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세상을 살다가 보니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가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뻔히 알면서 억지를 부리기도 하고 때를 쓰기도 한다. 잘못한 것을 알면서 마지막 말 한마디 미안하다는 표현을 못 한다. 머리로는 안 되는 줄을 알지만 마음이 따르지 않는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고급한 인격을 소유한 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하여 육체의 고행을 한다. 육체는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육체가 고통 가운데 있으면 부정한 것이나 탐심이 사라진다고 믿고 있다. 이 방법은 타 종교에서 쓰는 방법이다.
 
그러나 신자들은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악을 선으로 이기는 법이다. 선을 알아야 악을 물리칠 수 있다. 먼저 선을 알아야 한다. 지혜, 공의, 정의, 정직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의 시작이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사람과 사람과의 싸움은 각 자의 고집의 충돌이라 하겠다. 즉 가기의 생각이 옳기 때문에 정의롭다는 것이다. 상대방 역시 같은 생각이다. 이 고집의 연장으로 질서를 세우기 위한 법원이 필요하다. 잘잘못을 밝히고 옳은 것을 세우기 위함이다.
 
이 충돌은 개인, 집단, 국가, 연합 국가 간에도 똑 같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국제법이나 유엔이 정한 법이 있다. 이러한 법들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힘있는 자들에 의해서 변경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하신 법은 영원하다.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의인과 악인에 대한 심판이다.
 
그래서 의인으로서 악을 거부하고 물리치고 다스리며 살아야 하는 수고가 있다.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다고 한다. 용사라 함은 전쟁에서 적군을 물리치는 용맹스러운 사람을 말한다. 그 만큼 지략이 있고 자기의 몸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훈련된 자이다.
 
분을 발하면 어떤 상황, 어떤 관계가 형성이 될 것인가를 알고, 결정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는 것을 아는 자가 노하기를 더디한다는 것이다. 또한 적군의 성읍을 빼앗는 것은 고도의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읍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한다.
 
하나님 앞에서 상급의 가치와 의인으로서의 실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죄를 다스릴 줄 안다는 것이 대단한 것이다. 죄라는 것이 마음의 문 앞에 엎드려져 있다고 한다. 그러니 기회만 주면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다.
 
죄가 내 마음에 들어와 분을 발하게 하는 것은 파멸로 끌고 가기 위한 속임수이다. 분을 발하는 이유는 나는 정당하고 상대방은 멸시하는 행위가 포함된 것이다. 나는 의로운 자이고 상대방은 형편없는 자라는 정죄의 행위이다. 이러한 사람을 성경에서는 바리새인이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내 마음의 관심, 내 마음이 좋아하는 것,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일 때에 편한지를 진단하여야 한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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