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나에 관한 이야기를 내가 없는 곳에서 누군가가 전하고 있다면 기분이 좋을 리는 없다. 왜냐하면 사실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에 옳고 잘못된 것에 변호와 검증이 필요하다. 그런데 당사자가 없는 상황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다가 보면 한 쪽으로 치우쳐서 외곡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모여 사는 공동체에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아니 할 수 없다. 그 범위는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범할 수 있는 실수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들은 웃음을 짓게 하고 오히려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죄의 성품을 갖고 있는 인간들이 실수할 수 있다. 그래서 죄의 세력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하고 또한 물리쳐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죄인들에게는 예수님의 손길과 도움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죄인을 찾아오시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주셨다. 진리를 외치시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불쌍하게 여기셨다. 세상이라는 곳은 하나님이 없는 곳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을 세우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이라는 곳은 죄가 관영하는 곳이다. 죄는 사망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서로를 죽이고 결국은 나도 죽고 모두가 죽는 곳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이 죄로 인하여 죽게 할 수 없어서 십자가의 구속사역을 작정하셨다.
 
하나님의 십자가의 구속사역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은 자들은 새생명을 얻었다. 이 새생명은 세상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이다. 사망이 건드릴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새생명이 나가서면 사망은 물러가게 되어 있다. 그러니 새생명을 얻은 자는 생명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이다.
 
세상 사람들이 즐겨하는 험담은 모두를 죽이려 한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근거 없는 소문에 의하여 자살로 몰아간 것이다. 그리고 그 근거 없는 소문이 꼬리를 보이지 않고 계속 생겨난다. 그러니 해명이나 변명도 할 수 없다. 우리들이 생각 없이 툭 던지고 재미삼아 던진 말로 인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새생명을 얻은 자들에게는 보혜사 성령이 내재하고 계신다. 보혜사는 위로자라는 뜻이다. 그래서 새생명을 얻은 자들은 인생의 문제를 보혜사 성령에게 아뢴다. 그러면 보혜사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임하게 한다. 그래서 신자들은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들고 나가는 것이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고급한 성품을 소유한 자들이다. 그래서 말을 할 때도 조심스러워야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말하는 것은 대화라 하고, 상대방이 없는 상태에서 말하는 것은 험담이라 한다.
 
그래서 가장 수준이 낮은 대화가 험담이고, 그 다음이 잡담이다. 그리고 좀 수준이 있는 대화가 환담이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것이다. 더 수준이 있는 대화가 상담이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는 것이다. 사망의 그늘에 있는 자를 생명의 자리로 옮기고, 낙심한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주는 실력이다.
 
그러니 그 사람의 대화의 수준을 보면, 그 사람의 정체를 알 수 있다. 사망의 세력인지, 새생명을 소유한 자인지 파악이 된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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