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행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행 3:8) 사람들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가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성공과 출세를 위하여 또는 바라는 욕망을 이루기 위함이라 한다. 만일 그러한 믿음을 위하여 예수님을 믿는다면 잘못된 것이다. 또한 그러한 것을 복음이라 전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이단이 된다. 올바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게 되면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증거가 성전 문 앞에 앉아 있다가 구원을 받은 구걸하는 자를 통하여 보여 준다. 그가 일어나 걷게 되었다. 걷게 되자 하나님이 계신 성전 안으로 걸으며 뛰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행 3:9)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에 거하시는 교회로 나오게 되어 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자, 대언자,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나가게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는 그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삼위일체의 구원론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떠들고 선동질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그의 나라와 의를 배우고 듣게 된다. 그것은 약속으로 되어 있어서 성취로 이루어진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자신 앞에 서게 하여 자신의 목회 철학과 부흥을 위한 것을 전한다. 만일 이러한 교회를 출석한다면 즉시 탈출하여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은 교회로 모이게 되어 있고, ...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행 3: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행 3:2) 베드로와 요한은 제구 시에 성전에 기도하러 갔다. 그곳에 구걸하는 거지가 있었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을 한다. 그러자 제자들은 그를 불쌍히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걷게 한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행 3:6) 걷지 못하는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가지 못한다. “아론에게 말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너의 자손 중 대대로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니라”(레 21:17) 성전 문 앞에 있는 자의 비애(슬프고 애처로운)는 무엇인가? 자신은 성전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의 공동체에 들어갈 수 없음을 말한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어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것이다.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그 능력을 제자들에게 주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단절된 자들에게 준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행 3:6) 제자들에게 있는 예수님의 능력이 걷지 못하는 자에게 전해지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의 손을 붙잡는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행 3:7) 그는 일어서고 걷게 되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것이 성전을 향하여 가며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이다.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행 3:8) 즉 나면서 걷지 못했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다는 기적을 전하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는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은 금과 은이 ...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약 2: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약 2:8)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최고의 법이 무엇이며, 그의 법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알게 한다. 가난한 자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행위이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 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약 2:5) 초대교회 때에나 지금도 교회 안에서는 부자들이 대우를 받고 있다. 만일 그러한 일이 있다면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대적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을 부정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말씀과 명령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다. 그런데 그것에 최고의 법이 된다. 그 이유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법이기 때문이다. 네 이웃에 대한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등을 포괄하고 있다. 이것을 지키는 자는 최고의 법을 지키는 자가 된다. 본문에서는 교회 안에서 차별의 행위가 최고의 법을 어긴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실 때에 외모를 보시고 판단하지 않으시고 차별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참된 신앙이나 지식은 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차별없이 대하는 실천적인 사랑과 순종으로 나타나야 함을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율법의 핵심이 되는 십계명을 지키는 자는 최고의 법을 지키는 자이며, 최고의 권위를 가진 자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행위를 행하지 않는 자는 죽은 믿음을 가진 자이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 https://youtu.be/dulpRxSNjoY?si=weL5PoF1HCM4eKxj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만왕의 ...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대상 13:11)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대상 13:11) 역대상 13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사람의 선의와 열정으로 할 수 없음을 말한다. 만일 이것을 모르면 하나님을 샤머니즘 신앙으로 섬기게 된다. 어떻게 하든 하나님만 열심히 섬기면 될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더 나아가 우상숭배가 됨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다윗은 군사 삼만을 동원하였다.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삼하 6:1) 그리고 새 수레를 만들어 하나님의 궤를 옮겨 오려 했다.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세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례를 모니라”(삼하 6:3)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렀을 때에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웃사가 죽었다. 웃사가 죽게 된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이 진노하셨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삼하 6:7)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자기의 선의와 열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있다. 그러다보니 교회 안에서 열심히 혈기를 부리고 다투는 것이다.  여호와께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다윗과 이스라엘이 법궤를 옮기는데 실패한 이유는 여호와의 말씀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의 약속의 말씀에는 레위 지파 고핫 자손들이 법궤를 어깨에 메고 옮겨야 했다. “고핫 자손에게는 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의 성소의 직임은 그 어깨로 메는 일을 하는 까닭이었더라”(민 7: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께서 게르손 자손들에게는 수레 둘과 소 네 마리를 주었습니다. ...

“이 모든 군사가 전열을 갖추고 다 성심으로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을 온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자 하고 또 이스라엘의 남은 자도 다 한 마음으로 다윗을 왕으로 삼고자 하여”(대상 12:38)

  “이 모든 군사가 전열을 갖추고 다 성심으로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을 온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자 하고 또 이스라엘의 남은 자도 다 한 마음으로 다윗을 왕으로 삼고자 하여”(대상 12:38) 역대상 12장에서는 다윗 왕국에 세워지는 과정을 소개한다. 다윗이 무력을 사용하여 각 지파의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인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들의 모임을 말한다. 전쟁에서 용감했던 자들과 패하였던 사람들도 함께 하였다. “이 모든 군사가 전열을 갖추고 다 성심으로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을 온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자 하고 또 이스라엘의 남은 자도 다 한 마음으로 다윗을 왕으로 삼고자 하여”(대상 12:38)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데 있어서 강한 것이나 약한 것은 조건이 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다. 구약시대에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로 들어갈 수 있다. “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신 23:1) 이러한 자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행 8:38) 또한 지혜로운 자나 미련한 자도 조건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전 1:27) 즉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나 조건을 보시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 16:7) 하나님께서 다윗의 중심을 보셨다. 그 중심을 보셨다고 함은 아버지의 양 떼를 맡아서 잘 쳤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실패한 이스라엘...

“전에 곧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입하게 한 자가 왕이었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대상 11:2)

  “전에 곧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입하게 한 자가 왕이었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대상 11:2) 사울 왕국이 몰락을 하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 위에 오른다. 오르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작정을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자이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 16:16:7)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하는데 있어서도 작정을 하셨다는 것이다. 새 언약을 말씀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하신다.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감에 있어서 충성을 요구한다. 다윗 왕국이 세우질 때에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있었다.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수효가 이러하니라 학몬 사람의 아들 야소보암은 삼십 명의 우두머리라 그가 창을 들어 한꺼번에 심백 명을 죽였고”(대상 11:11) 또 다윗에게 충성스러운 용사들이 있다. 즉 다윗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걸고 베들레헴 성문 곁에 우물물을 가져 온다. “다윗이 갈망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꼬 하매”(대상 11:17)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희생제물로 드려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 그리하므로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신다. 다윗은 신하들이 떠온 샘물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다. “이 세 사람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고”(대상 11:18) 하나님의 나라는 그의 말씀과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을 통...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대상 10: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대상 10:14)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실패한 역사를 통하여 교훈을 주고 있다. 즉 이스라엘이 왜 패망을 하였고, 사울 왕조가 왜 다윗의 왕국으로 넘어 가게 되었는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사울 왕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다. 그리고 나라의 위기가 닥쳤을 때에 여호와께 물은 것이 아니라 무당(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했던 것이다.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셨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대상 10:13) 이스라엘은 언제든지 여호와께 묻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사무엘 선지자를 세우셨다. 그러나 사울은 선지자의 말을 따르지도 않고 묻지도 않았다. 사울 왕조의 비참한 몰락을 통하여 확인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중요성이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불순종하는 자의 길은 허망으로 간다. 그래서 점집이나 무당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삼상 12:23) 사울이 여호와의 말씀을 불순종한 이유는 백성의 소리를 더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주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삼상 15:24)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권이 다윗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즉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배반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결과가 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그러한 자들을 버리신다. https://youtu.be/INLMkrVnY7o?si=4xStJ7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