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여 나를 반기시는 때에 내가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네게 응답하소서

  “여호와여 나를 반기시는 때에 내가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네게 응답하소서”(시 69:13) 시편을 계속 묵상하다가 보면 다윗의 고난이 지속된다. 그냥 단순히 고난을 참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전하려는데 의도와 목적이 있음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본문에서는 다윗이 악인들 앞에서는 당당하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고백한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가기 위해서는 다윗의 죄를 속량해 주어야할 구원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전하려 한다.   다윗이 고난을 당할 때에 그의 형제들도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형제들은 용감한 용사들이다. 그들은 사울 왕이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에 함께 하였었다. “내가 나의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나의 어머니의 자녀에게는 낯선 사람이 되었나이다”(시 69:8)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임하게 하기 위하여 다윗은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을 하였는데 그것이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굵은 베로 내 옷을 삼았더니 내가 그들의 말 거리가 되었나이다”(시 69:10) 그렇지만 다윗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간구하였다. “여호와여 나를 반기시는 때에 내가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시 69:13) 그리하였더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물리치시고 다윗을 구원하여 주셨다.   본문을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좋은 제물로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더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은 하나님의 성품이 그러하시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 34:6) 하셨다. 인자하신 하나님께는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

내가 너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전절에 예루살렘에 이르셨는데 때는 겨울이다. 수전절은 오늘날 유대인들이 지키는 하누카이다.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을 이해하려면 수전절을 이해하여야 한다. BC165년에 수리아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가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성전 안에 제우스 상을 세우고 돼지 피를 뿌려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는데 유대 마카비 군대가 BC163년에 성전을 탈환하고 성전을 청소하고 불을 밝히었다. 그것을 전통적으로 지키는 것이 수전절이다. 그래서 수전절은 빛을 밝히는 축제이다.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 안에 들어가셨지만 정작 유대인들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오신 것을 모르고 있다. 왜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일까?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로마 정권을 무너뜨릴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고 영생을 주시러 오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유대인들이 간절히 기다리는 빛되신 하나님이 그들 앞에 와 있어도 알지 못하고 있다. 즉 세례요한에게 물세례를 받고 메시야를 기다리는 그들에게 빛의 실체이신 하나님이 오셨지만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돌로 치려하고 신성모독죄로 고발을 한다.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다”(요 10:33)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이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유대인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데 자신들의 입장에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롬 10:2)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동족인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짐을 믿지 않고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서신을 보내고 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데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하여 지적을 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과 성전 그리고 율법에는 대단한 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역사적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가되는 것을 몰랐음을 말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사람의 의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구원이 임함을 확인시키기 위하여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막 4:12) 비유로 말씀을 하신 것이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마음으로 믿어야 한다. 지식과 뜨거운 마음과 말씀에 따른 순종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분을 머리로 삼고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그러면 올바른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올바른 지식이란 선지자와 사도의 글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시다.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을 돌 판에 써 주시면서 이와 같이 자신을 소개하셨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 34:6) 그래서 하나님은 인애를 제사보다 좋아하신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이다. 반면에 제사를 드릴 때에 교만함이 나타날 수 있다. 송아지나 양의 제물을 바치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은 싫어하신다는 것이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은 목이 곧은 백성이라 하신 이유가 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자비와 긍휼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자를 좋아하시고 또한 구하려 나오는 자를 좋아하십니다. 이것에 대한 좋은 비유가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입니다. 먼저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눅 18:11),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 18:13), 하나님께 자비와 긍휼을 구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두 사람 가운데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은 바리새인이 아니고 세리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 자비와 긍휼을 구한 사람은 세리이기 때문입니다. ...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대하 14:11) 대하 14장은 아비야의 아들인 아사 왕 때에 일어난 일을 전하고 있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한 자였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대하 14:2) 그때에 구스 사람 세라가 군대와 병거를 이끌고 남유다는 치러 올라 왔다. “구스 사람 세라가 그들을 치려하여 군사 백만 명과 병거 삼백 대를 거느리고 마레사에 이르매”(대하 14:9), 군사 백만 명과 병거 삼백 대를 거르고 온 것이다. 반면에 남유다에서는 “아사의 군대는 유다 중에서 큰 방패와 창을 잡는 자가 삼십만 명이요 베냐민 중에서 작은 방패를 잡으며 활을 당기는 자가 이십팔만 명이라 그들은 다 큰 용사였더라”(대하 14:8), 유다와 베냐민의 군대를 합치면 오십팔만 명이다. 그러나 아사 왕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대하 14:11) 그리하였더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스 사람들을 치셨다.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들 앞에서 치시니 구스 사람들이 도망하는지라”(대하 14:12), 여호와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승리를 주신 것이다. 아사 왕이 이렇게 기도를 하였다.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라는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주의 이름은 그분의 인격을 나타낸다. 그분은 ...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대하 13:5) 대하 13장에서는 아비야의 군사 사십만 명과 여로보암의 군사 팔십만 명에 더불어 싸웠다. 그때에 르호보암의 아들인 아비야가 북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외치고 있다. 그 내용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과 언약은 영원함으로 너희가 전쟁에서 패할 것이라 한다. 그것에 대한 증거로 아론의 후손이 제사장들을 쫓아내고 여로보암이 허락을 하면 제사장으로 세웠다. “너희가 아론 자손인 여호와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쫓아내고 이방 백성들의 풍속을 따라 제사장을 삼지 아니하였느냐 누구를 막론하고 어린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끌고 와서 장립을 받고자 하는 자마다 허무한 신들의 제사장이 될 수 있도다”(대하 13:9) 반면에 남유다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이 있는데 아론의 자손이며 레위 사람임을 강조하면서 언약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이 되시니 우리가 그를 배반하지 아니하였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있으니 아론의 자손이요 또 레위 사람들이 수종 들어”(대하 13:10) 결국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한 아비야가 전쟁에서 승리를 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유다 앞에서 도망하는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므로”(대하 13:16) 이스라엘 군사 오십만 명이 죽임을 당하였고,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을 치심으로 인하여 죽었다. “아비야 때에 여로보암이 다시 강성하지 못하고 여호와의 치심을 입어 죽었고”(대하 13:2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로보암을 통하여 많은 교훈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적인 약속의 말씀을 배제하고 종교의식을 따라서 행하거나 세우는 것이 범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아비야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따라야 함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직분자들은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밝히 알아야 합니다. 모르면서 외치게 되면 많은 사람을 ...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온전히 알리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하나님을 본다는 것과 음성을 듣는다는 것에 대한 정리이다. 하나님의 음성이나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사람들이 주장을 하는 근거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와 같이 자신도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을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택하여 부르신 목적이 있다. 죄인 중에 괴수를 택하여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다. 즉 바울 같이 악한 사람도 구원을 받았는데 너희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됨이 있어야 한다. 즉 그분을 따르는 제자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이다. 거룩하신 그분을 만났으면 거룩한 품성이 나타나야 한다. 방언은 신령한 언어로 하나님과 기도로 교제를 할 때에 사용이 된다. 그런데 만일 기도 후에도 성품적인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거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할 때에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먼저는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는 것이고 다음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감동이 생길 때이다.   그렇다면 말씀에 감동되어 마음이 움직였다고 할 때는 해석이 가능하지만 직접 듣는다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가끔 거짓 교사들이 자신을 신령한 자로 속이기 위하여 언제든지 속임수로 쓰는 방법이다. 그러나 성경적인 증거는 하나님은 모세와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고 지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셨다. 제자들은 가르침을 받은 대로 교회에게 서신으로 말씀을 전하였다. 이 모든 일에 성령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성경으로 기록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