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습 3:2) 교만한 자라 함은 잘난 척하며 자랑하며 뽐내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 앞에 교만한 자라 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주장함을 말한다.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함은 자신이 창조물인 것을 모르는 것이다. 즉 창조주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함을 거부함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심은 모든 피조물의 영광을 사람을 통하여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는 자들은 진노의 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정의와 공의를 거부하는 자들에게 불의 심판을 보여 주셨다. 소돔과 고모라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사망과 멸망을 있음을 알게 하셨다. 이와 같은 광경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도하였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 것이다. 죄와 탐욕이 이렇게 무서운 것임을 알게 한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진노 가운데에서도 구원을 베풀어 주시며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통하여 뜻을 이루어 가신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게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는 죄로 인하여 사망과 멸망이 임하여도 여전히 죄에 자리에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탐욕의 죄가 이렇게 무섭다는 것입니다. 사망과 죽음 가운데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습니다.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에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주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라”(습 1:18)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통하여 뜻을 이루시고 완성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장차 모압은 소돔 같으며 암몬 자손은 고모라 같을 것이라 찔레가 나며 소금 구덩이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니 내 백성의 남은 자들이 그들을 노략하며 나의 남은 백성이 그것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장차 모압은 소돔 같으며 암몬 자손은 고모라 같을 것이라 찔레가 나며 소금 구덩이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니 내 백성의 남은 자들이 그들을 노략하며 나의 남은 백성이 그것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습 2:9)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노의 심판 날이 있음을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셨다. 하나님의 속성은 영원하시고 변치 않으신다. 그러므로 진노의 심판이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그 날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백성들을 괴롭혔던 사람들의 불의 심판이 있고 소금 덩어리가 되어 황폐할 것임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택함을 입은 자들이 저들을 심판에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향기를 냄으로 인하여 생명과 사망을 구분한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5) 영생을 얻은 자들에게는 상을, 악을 행한 자들에게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스바냐서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진노는 질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를 싫어하며 대적하거나 불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호와의 약속의 말씀을 하찮게 여기고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모압과 암몬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빌 2:22) 그래서 디모데를 급히 빌립보 교회로 보낸다. 디모데는 나이가 적다.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말씀 전하는 자의 나이에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고 있는가이다. 디모데도 바울처럼 복음의 열정을 갖고 있고 바울을 아버지처럼 따르던 자였다.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빌 2:22) 바울과 디모데가 복음에 쓰임을 받고 있다. 그들은 무엇을 갖고 있기에 쓰임을 받는 것일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방식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하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하나님이 성육신 것은 섬기기 위함입니다. 말씀에 순종을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나이가 적은 디모데가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빌 2:28)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나 빌립보 교회를 걱정하고 있다. 걱정을 하는 이유는 말씀으로 하나 되게 하는 것과 에바브로디도의 병환 때문이다. 교회는 사람의 힘으로 세워져 가는 것이 아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 은혜의 말씀으로 인한 것이다. “지금 내가 여러분은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에 감옥에 갇히게 되자 빌립보 교회에서 도움을 주고자 로마로 보낸 일꾼이다. 그런데 그가 병에 걸려 심한 고생을 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의 근심을 덜어 주고자 에바브로디도를 보낸다.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빌 2:27) 다시 그를 돌려보내면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당부를 한다. 그를 존귀한 자로 여기라는 것이다. 로마에 와서 몸이 아파 바울을 돕지 못하였지만 그는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다.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빌 2:3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십니까? 본문에서 사도 바울도 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고민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구원에 이르는 고민이 있고 사망에 이르는 고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무엇일까요? 나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하여 배려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고민이 이러합니다. 자신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고 몸도 불편한 가운데 있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 13:1) 본문의 말씀은 세상 권세에 복종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다.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정권에 복종하여던 것을 볼 수 있다. 다니엘이 바벨론과 폐르시아 왕들을 섬기었다. 그리고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로마 정권에 항거하지 않았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확인하는 것은 이 땅의 왕들에게 권세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각 나라의 왕들에게 주신 권세는 악을 억제하는 힘이다. 즉 살인한 자를 살인으로 다스림을 말한다. 범죄를 제어하고 팽창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래서 개인에게는 양심을, 사회에는 윤리와 도덕을 그리고 나라에는 법을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에는 어떠한 권세를 주셨는가? 죄에 거하는 자들을 구원하는 복음을 주셨다. 거짓과 술수와 탐심에 눌려 있는 자들을 꺼내어 자유를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나라의 권세에 복종을 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거룩함을 드러내어야 한다. 그래서 도덕 법규도 잘 지켜야 하고 나라에 세금도 납부하여야 함이 당연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자들은 세상 앞에서 빚진 자로서 살아야 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가난한 자에게 먹을 것과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어야 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율법의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이것이 세상 앞에 모든 선함과 거룩함과 의로움을 드러내는 것이 됩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나라의 권세와 교회의 권세가 어떻게 다른지를 확인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모범적인 시민이요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본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에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주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라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본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에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주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라”(습 1:18) 스바냐의 뜻은 ’여호와께서 숨기신다‘이다. 즉 정직과 신실한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분노하심이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에 가득히 임하였다. 민족의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뜯어 먹고 살육하며, 재판장들은 밤에 이리로 둔갑을 하여 뇌물과 비리를 통해 밤중에 결론을 내었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을 이용하여 먹고 사는 자들이며 계시의 말씀은 자기의 의견으로 대치하는 짓을 하였다. 저들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외면하고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일어 열심이었다. 이제 하나님의 날로 불리는 심판에 날이 임하게 된다. 이 심판의 날을 피하기 위해서는 오직 구원자이신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는 것이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그러나 저들은 은과 금을 모아 여호와의 날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본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에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주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라”(습 1:18)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왜 복음이 필요한지 아십니까? 복음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이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즉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것이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인 심판의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8) 하박국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의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과 질문을 하였고 응답을 받았다. 하박국 선지자가 확인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악인에 대한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메시야를 주신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셨나이다(셀라)”(합 3;13) 즉 악인들을 향한 심판이 있는데 택함을 받은 백성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여 주심을 확인하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8)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전쟁이 났다함은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 하박국 선지자가 처한 상황이 이와 같습니다. 이때에 금과 은은 몸을 피신하는 길에 무거운 짐이 됩니다. 그리고 많은 곡식과 과일을 창고에 쌓아두면 적군에게 목표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나온 찬양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합 3:17)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8) 여러분!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작정되었음을 아는 자만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감사와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