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빌 1:9) 빌립보 교회에 분란이 일어났다.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이 로마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바울의 죄항목은 죽었던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셔서 이방의 빛이 되었음을 전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빌립보 교인들은 더 겸손하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었고,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은 어떠한 내용으로 서신을 보내는가 확인하여야 한다. 그는 빌립보 교회를 위하여 기도를 한다. 기도의 내용은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빌 1:9) 즉 하나님의 사랑을 지식과 총명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빌립보 교인들은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뜨거운 열정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사랑은 감정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율 13:10)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났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요일 4:9) 즉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는 사람을 살리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시기와 분쟁과 다툼으로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빌립보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스도의 사랑의 지식으로 알라는 것이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엡 3:18)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이 기본적으로 채워야할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그리고 희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누구도 빼앗아 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3) 바울은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에 함께 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같고 있는 지식으로만 하나님의 구원을 이해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선민으로서 특권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야곱의 이름인 이스라엘을 사용하신 것과 이스라엘을 내 아들이라 하셨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 그리고 만나와 메추라기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받은 백성은 이스라엘 뿐임을 자랑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 특별한 존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자세히 살피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롬 9:6) 즉 이스라엘이라 함은 육체의 백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백성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택함을 받은 백성들의 모임이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시며 뜻이다. 이것에 대하여 반문을 하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 그것에 대한 비유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롬 9:2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과 의지로 이루어집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여러분! 이스라엘의 실패는 자신들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롬 10:2) 그래서 지식과 지혜를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니 듣고 보고 배우셔야 합니다.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욘 2:4) 요나서 2장에서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여호와께 기도하는 내용이다. 자신의 의지로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여호와께 기도하여야 함을 교훈한다. 여호와께 쫓겨났다고 함은 그분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으로부터 격리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은혜로우심을 의지하는 태도이다. 요나가 고난 가운데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음성을 들으셨다는 것이다.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욘 2:2) 그러면서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감사하며 서원기도를 한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욘 2:9) 그리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물고기에 명령하여 요나를 토하게 하였다.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욘 2:1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의 말씀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기도를 멈추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나의 태도와 하나님의 사랑을 잘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요나는 비록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에서 버림을 당하였다 할지라도 주의 성전을 바라보았습니다.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는 요나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요나도 용서하여 주셨는데 하물며 우리일까 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며 말씀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가 생기더라도 주님을 멀리하거나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욘 1:14) 요나서는 오바댜서의 말씀과 비교가 된다.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는 심판을 받게 되지만 반면에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심판이 계획되어 있을지라도 돌이키시겠다는 것이다. 먼저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 여호와임을 말한다. 선지자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지만 거역을 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다. 그렇지만 풍랑을 일게 하고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회개함으로 다시 니느웨로 향하게 하는 하나님의 의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부르짖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이다. 이방인 사공들이 부르짖을 때에도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였을 때에도 들으셨다. 이방인들을 사랑하셔서 이스라엘을 복음의 통로로 불렀으나 그 사명을 거부하는 요나의 모습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대변하는 것이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요나는 선지자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선지자로 수치스러운 명예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요나와 같이 수치스러운 직분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지와 열심히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방 땅에 복음을 전하려 하였습니다. 요나와 이스라엘이 불순종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에 변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가 요나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옵 1:10) 오바댜서는 에돔의 국가적 재앙과 심판을 선언하는 내용이다. 내용으로는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과 구원으로 되어 있다. 에돔의 범죄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교만하였던 것들을 열거하고, 형제 나라인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멸망당하는 것을 기뻐하였고, 에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계시하고 있다. 여호와 앞에 교만이라 함은 자신을 과시하며 드높이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여호와의 말도 듣지 않고 복종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인하여 에돔의 심판은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완전히 진멸을 한다. “드민아 네 용사들이 놀랄 것이라 이로 말미암아 에서의 산에 있는 사람은 다 죽임을 당하여 멸절되리라”(옵 1:9) 이스라엘에 대하여 잔악하고 포악한 행동을 하였다. 그것은 마치 고와와 과부 같이 약한 자들에게 부당하게 대하는 것처럼 하였고 교활한 계획까지 세웠다.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옵 1:10) 이와 같은 에돔도 여호와의 구원의 날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올 것이라 하였다. “구원 받은 자들이 시온 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옵 1:2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에서 이 세상의 모든 나라가 타파되고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세력을 파하시고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여 그의 나라로 불러 드렸음이 확연하게 드러났습니다. 우리들은 구약의 계시의 말씀을 성취한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말씀은 정확무오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에 감사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죄의 심판에서 면하였으며, 하나님과 화목의 관계이며, 날마다 거룩을 향하여 나가는 기쁨입니다.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암 9:14) 아모스 9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판에 앞서 성전이 먼저 무너질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처소인 성전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 속으로 숨을지라도, 갈멜 산꼭대기에 숨을 지라도, 원수들에게 포로로 잡혀갈지라도 심판이 임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렇게 멸망시키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창조자가 되시고 심판주가 되신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볼 때에 하나님은 모든 백성과 자연을 다스리는 능력자임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주변의 나라들과는 달리 범죄하였을지라도 궁극적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의 선조들과 약속이 근거가 된다.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8) 이 약속의 말씀이 근거가 되어 범죄한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됨을 말한다. 그래서 유다 지파에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와 같은 말씀을 전하는 것은 진노의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는 여호와께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주가 되시고 심판주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면 이방신 앞에서 머리를 숙일 수 없게 됩니다. 우리들의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 것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날마다 성경의 말씀을 상고하여야 합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본문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지리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광야는 척박한 땅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머물며 가나안 땅으로 가야 한다. 광야는 물이 없는 곳으로 식물이나 가축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곳이다. 그곳에 있는 나무가 풍성한 과실을 맺기 위해서는 물이 흐르는 시냇가로 옮겨 와야 한다. 광야에 머물며 하나님을 거약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죽었다. 그런데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였던 갈렙과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 즉 가나안땅과 천국은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곳은 이른비와 늦은 비를 내려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다. 이것을 신약에서는 아버지의 집에는 풍성함과 평안이 있는 것으로 증거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함께 하시고 인도하여 주심으로 인하여 형통의 길을 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 모든 약속의 복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 주셨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있습니다. 택함을 받은 백성들에게 풍성함과 평안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그리고 영원히 멸망을 당하지 않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늘 푸르른 과실나무가 되어 매달 마다 열매를 맺게 되는 풍성함이 있습니다.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계 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