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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골 1:5) #오직 예수 그리스도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골 1:5) 골로새서는 바울의 옥중서신이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이단적 가르침을 경계하기 위하여 쓴 서신이다. 교회 안에 혼합주의, 금욕주의, 천사숭배 등을 들어와 있다. 그래서 만물의 머리가 되시며,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신성과 구속 사역의 완성을 선포한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 1:18) 머리가 되신다 함은, 지배권과 생명의 원천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몸은 머리로부터 모든 영양분과 지시를 받듯, 교회는 그리스도의 통치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을 말한다. 예수님은 창조의 시작이며 구속의 기초이시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라는 표현은 부활의 첫 열매로서 새로운 창조의 통치자가 되셨음을 말한다. 그분은 타락한 만물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유일한 중보자이다. 그래서 모든 영역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롬 8:19) 그래서 교회는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한다.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골 2:19) 사망을 부활로 승리하시고 머리가 되셨다. 그래서 예비하는 길은 진리이며 생명의 길이 되어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길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그래서 신자들은 모든 일과 생각하는 것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하심을 따라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참된 자유와 안식을 누리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골로새서가 전하는 말씀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절대적 탁월함과 충분성’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면 구원을 얻고 하나님 아버지에게...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문서 창고 곧 바벨론의 보물을 쌓아둔 보물 전각에서 조사하게 하여”(스 6:1)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문서 창고 곧 바벨론의 보물을 쌓아둔 보물 전각에서 조사하게 하여”(스 6:1) 개혁 신학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성취되는 언약을 강조한다. 예루살렘의 성전 재건이 마침내 완성되어 봉헌식을 하게 된다. 왕들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대적들이 다리오 왕에게 편지를 올려 성전 건축을 방해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리오 왕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여 보물 전각에서 고레스의 조사를 살피게 한다.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문서 창고 곧 바벨론의 보물을 쌓아둔 보물 전각에서 조사하게 하여”(스 6:1) 왕은 조사를 살핀 후에 자신의 재산으로 비용을 대고 제사에 필요한 제물을 공급하라고 명령한다. 하나님은 대적의 꾀를 역이용하셔서 자신의 일을 이루신다. 성전 완공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으로 바사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따라 성전을 건축하며 일을 끝내되”(스 6:14) 백성들은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며 속죄제를 드린다. 그리고 유월절 절기를 지키었다. “사로 잡셨던 자의 자손이 첫째 달 십사 일에 유월절을 지키되”(스 6:19) 비록 솔로몬 성전에 비해 외형을 소박했을 지라도 그 안에 담긴 회복의 감사는 뜨거웠다. 이스라엘의 형통과 기쁨은 여호와 하나님과 관계 회복에서 옴을 알 수 있다.  성전의 중요성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에스라의 성전은 다시 무너졌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가리켜 참된 성전이라 하셨다, “이 정전을 허물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성전 완공 후에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켰듯, 신약의 성도들은 우리를 대신해 희생되신 유월절 양 그리스도를 먹고 마심으로 생명을 얻는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스 5:2)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스 5:2) 예루살렘 성전 재건이 16년 동안이나 멈추었다. 다시 성전 공사가 시작됨은 선지자들의 외침과 백성들의 순종이다. 환경이 변하여서 재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학개와 스가랴에게 임하였기 때문에 시작이 된 것이다. 이는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개혁이 됨을 말한다. 아직도 대적들의 방해 시도가 여전 하였다.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공사가 다시 중단되지 않았다.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아뢰고 그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더라”(스 5:5)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자,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일어나 다시 성전 건축을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도와 사역을 감당하였다. 이는 영적 지도력과 하나님의 말씀이 만날 때 일어나는 강력한 능력이다. 닷드내가 다리오 왕에게 올린 보고서에는 유다 백성들의 신앙고백이 담겨있다.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한다. “그들이 우리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예전에 건축되었던 성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스 5:11) 구약에서는 선지자들이 백성을 격려하고 위로하였지만,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보혜사 성령님이 계신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즉 낙심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분은 기록된 말씀과 성령의 역사이다.  닷드내 앞에서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들도 담대함으로 고백할 수 있다. “사람이 너희를 회장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욥 10:1)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욥 10:1) 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가 필요함을 간구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처지를 탄식한다. 그리고 괴로운 대로 따져 묻는 기도를 한다. 따져 묻는 내용은 창조주가 되셔서 아름답게 창조하셨는데 왜 친히 학대를 하시냐는 것이다.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추시기를 친히 여기시나이까”(욥 10:3) 즉 그렇게 정성껏 만드신 하나님이 이제는 왜 자신을 멸하려 하시는지, 이 상황이 혹시 원래부터 하나님의 마음에 감추어진 뜻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한데 주께서 이것들을 마음에 품으셨나이다 이 뜻이 주께 있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욥 10:13) 그러면서 자신이 죄를 지으면 주께서 감찰하시고 의로움을 나타내신다는 것이다. “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젊은 사자처럼 나를 사냥하시며 내게 주의 놀라움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욥 10:16) 이럴 거면 차라리 태에서 바로 죽게 하시지 그랬냐고 탄식을 한다. 그래도 욥이 구하는 것은 죽음의 땅으로 가지 전에 잠시만이라도 평안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내 날은 적지 아니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담시나마 평안하게 하시되”(욥 10:20) 욥의 생각을 정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나를 만드셨는데 지금은 나를 부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해할 수 없는 섭리 앞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붙들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다.  그런데 욥이 깨달은 것은 이러한 마음을 마음에 품으셨다고 한다. “그러한데 주께서 이것들을 마음에 품으셨나이다 이 뜻이 주께 있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욥 10:13) 즉 하나님의 작정하심이 창세 전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계획 하에 택한 성도를 연단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함을 말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의 의로움은 하나님 앞에 방어막이 되지 못합니다. 욥의 ...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는 말씀이다. 하지만 이 구절을 긍정적 사고 방식이나 자기 암시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개혁주의 신학으로 이해를 하여야 한다. 즉 칼빈의 5대 교리로 정리하여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1)인간은 완전 부패하였고, 2)무조건적인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3)제한 속죄, 4)불가항력적인 은혜, 5)성도의 견인을 말한다. 그래서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은,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았고 어떠한 것이라도 하나님의 구원을 막을 수 없다. ”즉 전쟁이나 기근으로도, 병상에 누워있어도 취소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구원의 기쁨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요 15:11), 예수님의 기쁨이다. 십자가를 지시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할 때에 누리는 거룩한 기쁨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였고 무능하기 때문에, 단 1초라도 거룩하게 살 수 없고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을 의지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적 연합을 위한 기도로 자기를 부인하는 상태를 말한다. 기도의 응답이 늦더라고 실망하지 말고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눅 18:1-8) 기도하는 것으로 끝까지 간구하여야 한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그분의 작정과 섭리 속에 역사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사업에 실패를 하더라도, 아프더라도 거룩한 자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믿음의 고백이다. 예수님도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에서 배척을 당하셨을 때에, 아버지께 감사하였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옳소이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마 11:25-26) 즉 내 뜻이 꺾이는 순간에도 감사하다며 자신을 낮추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성경은 하나님의 정확 무오한 말씀이라 고백합니다. 왜 ...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밖에서 옥을 지키더니”(행 12:6) #하나님의절대주권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밖에서 옥을 지키더니”(행 12:6) 우리들이 드리는 기도가 완벽하다고 생각을 하면 큰 교만이 된다.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는데 있어서 그의 주권으로 이루어 가시는데 부족한 자들의 기도도 들어 주심으로 이해를 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유대인과 이방의 사도로 쓰시기 위하여 옥문을 터트리신다. 이적은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가는데 방해하는 것들이 있을 때에 행하신다. 이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시고 베드로와 교회를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행 12:16) 그리고 베드로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러 떠난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행 12:17)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순종하여야 하여야 한다. 예수님은 타인의 사명과 자신의 사명을 비교하려던 베드로에게 단호히 ‘네게 무슨 상관이냐’라고 하셨다(요 21:23). 그러니 나의 고난과 응답으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 하면 안 된다.  그리고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이 세상의 두려움을 삼켜버렸다. 즉 세상의 권세가 나의 재물을 빼앗을 수 있으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내 영혼은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다. 기도는 겸손함으로 하여야 한다. 말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보심을 기억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신실함에서 나온다 함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들의 기도에 믿음이 부족할지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다. 즉 나의 믿음의 부족함을 우리 주님께서 함께 하여 주심으로 아버지 앞에 이르게 한다.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구출을 통하여,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철저한 무능 그리...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행 12:1-2)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행 12:1-2) https://youtu.be/FeGQ-jeraXE?si=Me6b6o-BQy8nky5z 본문에서는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구출이 대조되는 부분과 하나님의 기도에 대한 응답에 무능함을 보여 준다. 즉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철저한 무능, 그리고 오직 은혜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알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 하에 야고보는 순교를 당하고 베드로는 생존을 한다. 헤롯의 칼에 야고보는 순교의 제물이 되고, 베드로는 천사를 통해 기적적으로 구출을 받는다. 그것은 야고보가 기도를 덜 해서 죽은 것이 아니다. 그의 순교를 통해 교회의 밑거름을 삼으시는 것이고, 베드로를 살려내어 이방 선교의 문을 열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니 땅 끝까지 이르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아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인간의 열심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일이 일어남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들에 대한 성취이다. 그것에 대한 증거가 베드로는 내일이면 헤롯의 손에 죽어야 한다. 그런데 감옥에서 깊이 잠이 들어 천사가 옆구리를 쳐서 깨워야 할 정도이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주시는 생명적으로 연합된 평안이 있기 때문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이제는 인간의 전적 무능과 오직 은혜를 볼 수 있다.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막상 그가 살아서 문을 두드리자, 전하는 자에게 ‘네가 미쳤다’고 한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우리들의 믿음과 기도는 불완전하고 의심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기도가 완벽해서 감옥 문이 열린 것이 아니다.  십자가의 구속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하에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