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목회는 사람을 상대로 하다가 보니 다양한 방면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또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도 특별하고 엉뚱한 사람들이 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엉뚱한 사람이 교회를 나오는데 하나님을 위하고 목사를 위하여 나온다는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은 교만 중에서도 최상의 교만을 가진 자들이다. 마치 자기가 은혜를 베풀고 하나님을 수혜자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기 때문에, 자기가 내는 헌금으로 사시는 분으로 생각하는 오해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자들은 교회를 들어와도 당당하다. 돈이면 무엇인들 못하겠느냐는 교만이 철철 넘쳐흐른다. 왜 하나님께 나와야 하는지를 모르는 무지한 자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성경 말씀의 증거는 하나님이 나타나셨던 역사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감동을 받은 자들의 고백이다. 하나님이 없이는 세상의 어떤 한 것도 존재할 수 없었으며, 내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찬양이다.
 
주님이 피흘려 세우신 교회를 만홀히 여겨 자기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중상과 모략으로 교회와 목사를 힘들게 하는 자들이 참 많다. 저들의 수법은 거짓과 선심이다. 거짓으로 이간질을 하고 없는 이야기를 만들고, 독약을 탄 음식을 웃음으로 제공한다.
 
그러다보니 많은 교회와 목사들이 고생을 하고 있다. 이러한 자들과의 싸움은 혈과 육으로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 영적 싸움이다. 저들이 만든 거짓 이야기에는 사람의 마음을 타오르게 하는 분노의 불화살이다. 그것을 믿음의 방패로 막아야 한다. 저들이 화살을 쏘다가 지칠 때까지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의의 심판에 맡기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저들과 혈과 육의 전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이다. 악한 마귀는 교회와 목사를 낙심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 전파를 막고 있다.
 
고린도교회에도 이러한 자들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 전파를 방해하고 사도를 고의적으로 비방하는 자들이 있었다. 저들에 의하여 복음 전하는 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나, 실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복음을 전하는 사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들은 우리들의 육체의 약한 것을 꼬투리 삼고 공격을 하지만 우리 안에는 보배이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한다.
 
그러기 때문에 목사는 낙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 중요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 목사가 당하는 고난 속에서 예수의 생명이 있음을 나타내고 교인들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다. 즉 악한 자의 궤략을 목사의 고난을 통하셔 교인들에게 확인시키고 보여 주기 위함인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사도 바울이 고난을 참았고, 믿음의 선배들이 참고 그 길을 따라 갔다. 그러기에 목사가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은, 복된 길로 가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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