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시편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보면 구원 받은 백성들이 시온산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장면은 너무도 감격적이고 영광스럽다. 그래서 구원 받은 자들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영광스러운 그 기쁨이 우리의 현실의 삶까지 연결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즉 신앙인에게는 현실의 문제와 현재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의 현실은 늘 기쁘고 평안한가?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구원을 주시고 구원의 영광의 자리인 시온산까지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생각해 보려 한다. 하나님이 죄인이었던 우리들을 택하시고 하시려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를 거룩하게 세우려 하신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거룩하고 흠이나 티나 주름이 없는 자로 만드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이다.

왜 그런가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에 우리도 거룩하게 만드려 하신다. 그런데 거룩하게 만드는 과정에 환난과 박해를 동원하여 사용하신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예수를 믿음으로 인한 핍박과 환난이 있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보내는 말씀에 환난과 핍박을 받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 자랑을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 환난과 핍박이 이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또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환난과 핍박이 주는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환난과 핍박이 옴으로 인하여 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되고 예수님이 오시는 그 날에 안식을 주신다는 약속이다. 그러고 환난과 핍박을 주었던 자들에게는 환난과 핍박으로 갚아 주신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환난과 핍박은 어떤 것인지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이 환난과 핍박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다. 우리의 지혜와 판단력 부족과 욕심으로 인한 어려움과 고통을 구별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허영과 허망된 것을 위하여 무리한 투자와 은행 대출 할부금 상환으로 오는 고통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분명히 아닌 것이다.

우리는 이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을 속이려 한다. 나의 허망된 욕심에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는 것이다. 내가 이 사업을 하는 것이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다고 변명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먼저 거룩한 자가 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물질의 성공으로 인하여 이름을 빛내라고 한 적이 없으시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내가 당하는 고통과 아픔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것인지, 내가 더 좋은 것을 갖기 위하여 투기를 하였다가 당하는 고통인지를 구분하여야 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리의 허망되고 허영된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루려 하는 고집이다. 이 고집을 부리다가 욕심이 이루어지지 않자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척하는 것이다.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결코 교회를 떠날 수도 없고, 하나님을 배척할 수도 없는 것이다. 잘못된 가르침과 배움으로 인하여 교회가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살후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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