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오늘은 추수감사절이다.
무엇보다도 감사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그래서 구원의 감사를 찬양하는데 손뼉을 치며 큰소리로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릴 수 있다. 이러한 찬양은 구원을 받은 자라면 당연한 것인데, 이것이 혼자 있을 때는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 여러 명이 함께 있을 때는 가능한데, 혼자 있을 때는 기쁨이 솟아오르지 않고 어색하기만 한 것일까 생각해 보려 한다. 구원이 내게 어떻게 임하였는지를 안다면 우리는 시편의 기자들처럼 손뼉을 치며 악기를 동원하여 찬양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들의 행위를 보고 구원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는 자에게 임한다. 이와 같은 선택을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전적으로 하시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구체적인 말씀을 로마서 9장에서 하셨다.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한 자들을 야곱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런데 야곱이 하나님께 선택을 받음으로 인한 것이다. 야곱은 그의 형인 에서와 쌍둥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태중에 있을 때에, 이미 선택을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인 리브가에게도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고 미리 예고하셨다.

이와 같은 결정에 대하여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이신 하나님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우주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대로 피조물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불쌍한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이다. 긍휼이 필요한 자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또한 하나님 앞에 교만한 자이었던 바로에게 열 가지의 재앙을 내리셨다. 이 일을 통하여 그 당시 주변에 있는 국가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알리셨다. 즉 교만한 자에게는 벌을 내리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긍휼을 베푸셔서 구원하여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이 내게 임하여 야곱의 후손으로서 야곱의 영광에 참예한 자가 되었고, 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자가 된 것이다. 이와 같은 구원의 감사의 내용을 안다면 우리들도 시편의 기자처럼 구원의 감사의 시를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신령한 노래로 찬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부르지 않았던 노래란, 내가 작사와 작곡을 하여 내가 처음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이런 노래를 부르는 자가 구원의 은혜에 감격을 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는 자가 되는 것이다.

추수감사절 아침에 구원의 감사의 시를 지어서 가족들과 함께 나누면 더욱 더 기쁜 감사절이 될 것이다.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지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롬 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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