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나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가이샤를 따를 것인가를 가이샤를 위하여 만든 도시에서 물으셨다.
 
빌립이라는 분봉왕이 로마의 황제 가이샤를 위하여 만든 도시에서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도를 말씀하신 것은 오늘의 현대인들에게 외치시는 메시지가 된다.
 
당대의 최고의 권력자를 따르면 권좌에 올라 권세를 누릴 수는 있지만 생명의 문제는 지킬 수 없음을 말한다. 즉 당대의 최고의 권력자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따를 것인가를 묻고 계신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고백이 있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그분의 말씀에 강력히 항의하였다. 결코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나라 하셨다. 베드로는 믿음의 고백은 하였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가이샤보다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더 강한 번영한 나라를 원하였던 것이었다.
 
우리들도 이 사건 앞에서는 믿음의 정체성이 흔들리게 된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생각이나 우리들의 생각이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함께 하셔서 시간이 지난 후에 믿음의 고백이 이어진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9) 베드로의 믿음이 확 바뀐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세상이 자랑하는 물질의 번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그 자체가 영광스러운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베드로의 믿음의 눈이 바뀌었다. 그분과 함께라면 좋다는 것이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베드로처럼 항변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자기의 생각대로 이루어달라고 외치는 자들이다. 그러나 믿음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그분과 함께 교제하는데 진정한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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