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교인들 가운데 믿음의 생활을 하면서도 온갖 종류의 걱정과 불안감, 긴장감으로 사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참된 신자라면 반드시 평안을 얻게 된다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수면제나 술을 마시고 있다.
 
우리는 먼저 이러한 고통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살펴야 한다. 최초의 인간 아담이 살던 곳에는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화평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범하게 되자 찾아온 것이 두려움이다.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한 나뭇잎이 필요하였다.
 
인간의 분노, 불안, 걱정이 하나님과 화목이 단절된 후로부터 시작이 된 것이다. 그래서 저들의 마음을 흔들리는 바다와 같다고 한다. 또는 시궁창과 같은 사람이라 한다. 더러운 것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겉으로는 평온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소용돌이가 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에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계획하심이 있다. 우리는 그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는 죄사함만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더 나아가야 한다. 십자가의 피로 죄사함만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됨은 물론이고 유대인과 이방인도 한 몸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즉 하나님과도 화목하게 되었고 이웃과도 화목한 관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는 논리가 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사랑과 화목으로 인하여, 사랑할 수 있는 자가 되었고 이웃과도 화목할 수 있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면 이러한 믿음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럴 때에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여 보아야 한다. 나는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스스로 질문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만 되지 않는다.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과 교제를 하고 있는가를 질문하고 있다.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의 존전에서 그리고 행실은 하나님과 동행이다. 이 길을 우리 주님께서 열어 놓은 것이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육체가 찢어질 때에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이다. 그래서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을 여신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성전 뜰만 밟다가 온다면 헛된 일만 한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하나님과 교제가 없다면 화목과 평안은 맛보지 못하게 된다.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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