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께서 대속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는다. 우리가 받아야할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이다. 그리고 부활을 하셨다. 그런데 부활하신 후에 하신 것이 갈릴리로 가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생각으로는 빌라도를 비롯하여 장로들과 대제사장 그리고 조롱하였던 관원들을 심판하셔야 당연한 것이 된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찾은 것이 아니라 갈릴리로 가셨다.
왜 주님은 갈릴리로 가셨을까?
이제 하늘로 승천을 하게 되시면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고 교회를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갈릴리에서 다시 제자들을 만나셨다. 그리고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 주셨다. 못자국, 창에 찔린 곳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생선을 잡수시므로 부활하신 주님을 확인시켜 주셨다. 그리고 부탁을 하신다. 내 양을 먹이고, 내 양을 치라고 하셨다.
교회를 세우신다함은 죄사함을 받은 이후에 더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함이다. 우리 주님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거듭난 자들의 머리가 되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한 하나님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주시기를 원하신다.
왜 그런가? 성부 하나님은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와 비밀을 밝히시기로 약속을 하셨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지혜와 비밀은 오직 교회를 통하여 발 수 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충만하심이 나타난다.
하나님은 충만하심을 나타내셔야 한다. 그래야 충만하신 하나님이라고 찬양을 받으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에 머리가 되게 하셔야 하고 그 안에서 약속을 행하셔야 한다. 그리고 교회를 충만케 하셔야 한다.
이 땅에 많은 교회가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지혜와 충만하심의 역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그 몸의 지체로서 순종하는 자들이 모여 있는 교회는 놀라고 신비스러운 체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반면에 불순종하며 배역하는 자들이 모인 곳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모인교회라 할 수 없다.
우리 주님은 택함을 받은 자들을 교회로 모이게 하신다. 그리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함이다. 주님은 이 땅에 사시면서 아버지를 만족스럽게 기쁘게 하는 삶을 사셨다. 즉 아버지가 아들에게 요구하신 대로 사신 것이다.
주님은 이 땅에서 아들로서 자의로 사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뜻을 이루시는 삶을 사신 것이다. 주님이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이유가 그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뜻을 이루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 안에서만 밝히신 아버지의 뜻을 알아야 한다.
아버지의 뜻을 밝히고 깨닫는 곳이 교회가 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하여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하여 사람으로 예수님을 보내셨다. 그것이 주님의 십자가의 구속사역이다. 그 일을 온전히 이루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 그리고 재림을 약속하셨다.
주님이 이루신 일들로 인하여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 결과로 교회의 건물이 쌓여가고 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근거가 되어 그 터 위에 건물이 지어져 간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가 거하시는 처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아버지의 지혜와 충만하심이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교회는 신비한 곳이요 아버지의 집이 되는 것이다.
교회 안에 부르심을 받았다고 모여 있지만,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적다고 한다. 주님을 따랐던 제자들 가운데도 더 듣고 싶지 않아서 떠났던 자들이 있었다. 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실 때에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교회가 능력이 없고 빈약함을 나타내는 이유가 택함을 입은 자가 적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 교인들은 많지만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는 것이다.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는 성령의 은사와 열매가 있다. 그러니 참다운 교회라 함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계획하신 비밀을 밝히고 선포하여야 하고 충만함이 나타나야 한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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