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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골 1:10) #십자가죽음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골 1:10)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공의를 만족시키며, 성령님께서 은혜를 적용시키므로 죄인들에게 임하였다.  이것을 개혁주의에서는 하나님의 주권과 그리스도의 중심성이라 한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바울이 전하고 있는 구원은 지적 동의를 넘어 성령의 조명에 의한 인격적인 변화임을 강조한다. 즉 단순히 지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를 통해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구원을 받은 자들을 통하여 이루시려는 궁극적인 목적이다. 이 일은 하나님의 거부할 수 없는 은혜가 전적 타락한 죄인들에게 강권적으로 나타났다. 그 강권적인 은혜로 흑암의 권세에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신 것이다. 오직 그의 아들의 피, 즉 구속 곧 죄 사함이 있음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이시며, 보존자이시며, 교회의 머리이시다. 그의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화평을 이루신다. 단지 개인의 구원을 넘어 만물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우주적 화해의 사건이다.  오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날이다. 이 날을 통하여 우리가 과거에 죄의 노예였고, 흑암의 권세 아래에 있었음을 확인한다. 그 흑암의 권세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깨뜨리셨다. 그리고 ‘다 이루셨다’는 말씀은 우리를 흑암에서 아들의 나라로 옮기기 위한 모든 법적, 영적 대가를 지불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창조주께서 피조물을 위해 죽으신 날로서,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임을 고백한다. 그 구속의 은혜로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자들이 이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그 다음의 목적은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세우기 위함이다. 이것을 성도의 견인이라 한다...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맹세하는지라”(스 10:5) #말씀재건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맹세하는지라”(스 10:5) 회개의 기도는 참된 회개의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 즉 실제적인 삶의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회개를 통하여 거룩한 공동체를 보존하여 하기 때문이다. 지, 정, 의가 함께 작동이 되어야 한다. 지-죄의 깨달음, 정-예스라의 눈물, 의-단호한 결단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개혁주의는 감정적 후회를 넘어 행동의 변화를 수반하는 회개를 참된 것으로 본다. 그래야 공동체의 거룩함을 해치는 죄에 대해 엄격하게 하는 것이 표지이기 때문이다. 에스라에 성전 앞에서 울며 기도할 때에, ‘스가냐‘라는 인물이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방 아내들을 내보기로 언약을 세웠다.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 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스 10:2) 에스라는 금식하며 근심하는 가운데 유다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소집을 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이방 여인과 결혼 자들의 실태를 파악한다. 여기서 이방 여인이라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 숭배를 하고 있는 여인들을 말한다. 그래서 이방 여인과 결혼했던 자들의 명단이 나온다. 여기에는 제사장, 레위인, 일반백성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름을 공개한 것은 그들의 죄를 자복하고 수치를 무릎쓰고 거룩함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이방 아내를 내보내는 것은 고통스러운 결단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서도 자기의 생각을 부인하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라 하셨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마 5:29) 가족 관계가 중요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거룩함보다 앞 설 수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스 9:14)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스 9:14)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돌아온 기쁨을 잠시 누렸지만, 예루살렘의 영적 타락상을 보고 처절한 회개와 중보기도를 한다.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인간의 전적 타락을 주장한다. 그래서 중보자가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죄인을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방 여인과 통혼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언약의 백성의 정체성을 잃어버렸음을 말하는 것으로 영적 간음을 말한다. 즉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를 하였다는 것이다. 방백들이 에스라에게 보고하기를, 유다 백성과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이 이방 민족들과 섞여 살며 가증한 일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방백들과 우두머리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그는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아 있다.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스 9:3)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공분이다.  이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이 에스라 곁으로 모여 듬으로 인하여 회개의 불씨가 된다. 그는 낯이 뜨거워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여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 기도한다. 에스라는 자기의 죄가 아님에도 옷을 찢으며 회개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하나님 앞에 서셨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고후 5:21) 그의 기도는 우리는 범죄하여 주 앞에 한 사람도 서지 못하겠다 하며 철저한 항복의 기도를 드린다.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스 9: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방 여인과 통혼을 금한 목적은 거룩함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위...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스 8:31)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스 8:31) 예루살렘에 성전이 재건이 되었다. 이제 성전 안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할 자들을 데리고 제2차 포로 귀환의 여정을 소개하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100%, 인간의 책임 있는 신앙을 100%를 강조한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기 위하여 금식기도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에스라 8장에서는 귀환자의 명단, 금식 기도, 안전하게 도착한 것과 예물 인계로 되어 있다. “아닥사스다 왕이 왕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스 8:1) 그런데 그는 그 중에 성전 봉사를 담당할 레위 사람이 없음을 발견하고 즉시 사람을 보내어 명철한 사람들을 데려온다. 이는 공동체의 회복에 있어 예배의 직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험란한 여정 가운데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한다. 그는 이미 왕에게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신다고 하였다.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으라”(스 8:22) 그래서 인간의 군대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스 8:23) 그가 올라올 때에 왕과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은과 금을 가져와 제사장들에게 맡긴다.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요 이 그릇들도 거룩하다”(스 8:28) 그가 아하와 강가에서 하나님의 손을 구했듯, 예수님은 우리에게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스라가 레위 사람들을 끝까지 찾아내 데려온 ...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스 7:10) #율법의말씀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스 7:10) 이제까지 성전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었다. 본 장에서는 성전 안에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를 말씀한다. 에스라는 제사장이며 학사로서 하나님의 율법에 능통한 자였다. 즉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은 외형적인 성전이 아니라 기록된 말씀을 배우고 준행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개혁주의에서는 성경은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임을 강조한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오게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이어 보낸 것이다.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스 7:9) 그는 대제사장 아론의 16대손으로 정통성 있는 계보를 가졌다. 그래서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스스로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스 7:10)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에게 전권을 부여한다. 그래서 원하는 모든 물자를 공급하고, 세금을 면제하고, 하나님의 법을 아는 자를 법관으로 세우라고 명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이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한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스 7:27) 그가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쳤다면, 예수님은 율법 그 자체이시며 율법을 온전하게 하로 오신 분이시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려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 그래서 예수님은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을 고치셨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행 12: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행 12:23) ‘헤롯이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라고 끝난 직후에,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라고 선포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행 12:24) 즉 세상의 왕인 헤롯은 썩어 벌레의 밥이 되어 사라지지만,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복음)은 결코 멈추지 않고 땅 끝까지 확장이 된다. 세상의 어떤 권력도 교회를 핍박하지만 하나님의 구속사를 막거나 지연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침에서도 ‘누구를 두려워 할 것인가?’를 말씀하셨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또한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라 하셨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교회 안에서 마찬가지이다. 내 직분, 내 헌신, 내 봉사를 내세우며 ‘나를 알아달라’고 교만하게 목을 세우는 순간,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는 ‘헤롯의 죄’를 짓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셨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결론적으로 정리를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한 권력자의 가장 끔찍한 최후를 본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교만이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행 23:2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만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평가를 하거나 스스로 판단을 하시면 안 됩니다. 만일 그러한 행위를 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행 12:22) #세상의권력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행 12:22) 헤롯 왕은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베드로를 옥게 가두었던 자이다. 그래서 세상의 권력이 교회를 완전히 짓밟고 이긴 것 같았다. 즉 세상의 권력이 얼마나 허망한지와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극명하게 대조하여 보여준다.  사도를 죽이고 감옥에 가두는 권세를 가진 헤롯이 벌레 하나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이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행 12:23) 세상의 권력과 그 밑에서 아부하는 자들의 모습이다. 식량이 부족한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에게 아부를 하여야 한다.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행 12:20) 헤롯은 아부하러 온 두로와 시돈 사람들 앞에 선다. 그 날에 왕은 순은으로 된 왕복을 입었다. “헤롯이 날을 액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행 12:21) 햇볕이 비추니 왕이 입은 옷은 은백색으로 빛이 난 것이다. 그러자 아부하는 자들은 신의 목소리라 하며 치켜 세운다.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행 12:22) 즉 헤롯은 교만하여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교만을 떤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기 위하여 선악과를 따 먹은 것과 같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그런데 세상의 권력을 쥐고 위엄을 떨던 자가 벌레 하나에게 죽는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은 날로 흥왕하여 간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행 12: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장 먹고살기 위해 권력자에게 영혼을 판 사람들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입니다. 식량을 쥐고 있는 헤롯에게 ‘신의 소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