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 5: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 5:38)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너희의 의가 바리새인의 의 보다 나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에 차이는 하나님의 의와 사람의 의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의를 전가 받은 자들은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를 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그래서 본문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보복과 힘의 원리를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 해석이 되어야 한다.

이것에 대한 비유가 있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께 질문을 하기를 몇 번까지 용서를 하여야 하냐는 것이다. 예수님의 대답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하라 하였다.

그러면서 천국은 이와 같다고 하면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종이 일만 달란트를 빚지므로 인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아야 한다.

주인이 불쌍히 여겨 그 종의 빚을 탕감하여 주었다.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빛을 탕감하여 주었더니”(마 18:27)

왜 탕감을 하여 주었을까? 그 종이 감옥에서 풀려나면 가족들과 함께 사람답게 살게 하여 주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의는 보복과 힘의 원리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엡 5:1)

즉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이므로 사랑을 베풀수 있는 자가 되었음을 말한다. 그래서 악한 자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주셨다. 하나님께서 먼저 죄인을 찾아와 용서하여 주셨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요일 4:9)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만이 이웃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용서의 횟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보복하지 않으며 용서를 할 수 있습니다.
이 살을 깨닫지 못한 자는 이웃의 백 데나리온의 빚을 용서하지 못하여 다시 감옥에 들어 갑니다. 감옥으로 들어가는 자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마 18:33) 
십자가의 사랑을 아는 사람만이 이웃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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